서양권에서 '백마와 왕자'라는 문제작이,
백마라 불리는 하얀 털을 가진 우마무스메들에 대한 차별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서양권 만의 일은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아직도 동양 최고의 고전들로 손꼽히는 '초한지'와 '삼국지 연의'가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먼저 초한지의 오추마는 동양권에서 우마무스메 털색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킨 첫번째 사례로 평가받는다.
오추마의 털색은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서초패왕이라 불리던 항우를 끝까지 보필한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항우가 아무리 패악질을 저질러도, 한나라가 어떤 좋은 조건을 내밀어도,
항우가 몰락하여 채 100명도 안 되는 병사들과 함께 한나라 군세에게 포위당했을 때조차 오추마는 항우를 배반하지 않았다.
심지어 항우가 자결하기 직전 오강 너머로 오추마와 마지막 남은 초의 병사 26명을 도망치게 했을 때,
오추마가 주군의 죽음을 살아서 볼 수 없다며 오강에 투신하여 자결하는 장면은 아직도 초한지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로 인해 검은 털의 우마무스메는 적국인 한나라에서조차 충성과 신의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오수현항(烏守玄恒)' 까마귀와 같은 검은 색은 그 어두움을 항상 지킨다는
사자성어가 오추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 충성의 증명이다.
허나 오추마는 동시에, 현대로 따지자면 '연애허접'의 상징이기도 하였는데 이는 전적으로 항우의 부인인 우미인의 탓이다.
우미인과 항우의 관계는 패왕별희 등 수많은 작품으로 재창작된 인기 연애담이었으며,
그 사이에 오추마가 끼어들 자리 따윈 없었다.
게다가 오추마의 남편에 대한 기록 역시 발견되지 않으며,
사실상 오추마가 항우를 연모했다는 것은 반 쯤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하지만 역사서의 대부분도 항우가 오추마를 여인보단 한 사람의 장수에 가깝게 생각했다는 것을 증언하는데다,
하필 전한 말기 항우와 오추마의 만남이 항우와 우미인의 만남보다 더 앞섰다는 야사가 유행하며
오추마는 순식간에 '충성과 신의의 상징'에서 '먼저 찜한 남자를 히토미미 여자에게 빼앗긴 연애허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전 오추마의 충성을 노래하던 사자성어 '오수현항' 역시 검은 머리 우마무스메의 깊은 충성이라는 뜻에서,
검은 머리 우마무스메는 평생 처녀로 산다는 의미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과 같은 털의 우마무스메들을 모조리 연애허접으로 만들어버린 오추마가 있는가 하면,
붉은 털의 우마무스메들이 골빈 년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버린 우마무스메 역시 있다.
동양의 가장 유명한 우마무스메 중 하나인, 삼국지의 적토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낮에는 1000리, 밤에는 800리, 현대식 기준으로 하자면 하루에 745km를 달릴 수 있다는 전설의 주인인 적토마.
자연히 삼국의 쟁패 내내 그 빼어난 능력을 탐내는 군웅은 수도 없었으며,
동탁, 여포, 조조, 관우, 손권, 마충 등 삼국지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장수들 밑에서 종군한 것이 바로 적토마라는 우마무스메다.
말만 들으면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 중 한 명일 뿐이지만, 문제는 저 장수들이 모두 다른 편이라는 것에 있다.
무려 동탁-여포-위-촉-오를 모두 경험한,
애비 셋 여포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만만찮게 편을 갈아탄 적이 많은 장수가 적토마다.
게다가 연애 묘사가 일절 없이 한 사람의 장수로 묘사되는 정사와는 달리,
삼국지 연의에서 적토마는 여포의 장수이자 첩 내지 비밀스러운 연인 정도로 묘사되는 터라....
결국 적토마는 그 무력과 무공이 강조되는 것 뿐만 아니라 팜므파탈적인 여인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잦았으며,
자연히 남자를 여럿 갈아치운 골빈 여인이란 음해가 붙은 것은 시간문제였다.
후일, 삼국지 연의를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조선의 선조가 '여포와 적토마'라는 과거시험 시제에
'적토마와 여포 사이에는 남녀 관계가 없었다'라는 합격자의 답변을 보고선 이게 무슨 개소리냐며
합격을 취소시켜버린 사례는 적토마에 대한 편견이 후대에도 뿌리깊게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붉은 머리 우마무스메를 휘하에 두느니, 망탁조의를 휘하에 두어라.
적어도 망탁조의는 경계할 수 있으나, 붉은 머리 우마무스메는 그 경계마저 풀어낼테니.'라는 속담은
적토마로 인해 한없이 내려간 붉은 털 우마무스메들의 인식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삼국지연의로 인해서 한없이 평가가 올라간 우마무스메들도 있었으니
바로 선명한 유성이 머리를 가로지르는 우마무스메들이다.
옛날 중국에선 이러한 우마무스메들을 '적로'라고 불렀고,
많은 사람이 알듯 이러한 적로를 아래에 두던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유비이다.
당시 적로 우마무스메를 윗사람으로 둔다면 길거리에서 객사할 것이요,
적로 우마무스메를 아랫사람으로 둔다면 시체는 길바닥에 버려질 것이란 말이 있어 적로 우마무스메란 기피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적로들은 대부분 도적단 같이 범죄에 손을 대는 일이 빈번하였는데,
유비의 적로 역시 장무라는 도적 아래서 일하던 도적이었다.
허나 장무가 조운에게 토벌되고,
적로의 무용을 눈여겨본 조운이 적로를 생포하여 유비에게 데려가 수하로 삼자고 조언하였으며,
평생 멸시받던 자신을 기꺼이 휘하에 받아들여 준 유비의 덕에 감격하여 유비를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호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유비에게 적로란 불길한 자이니 어서 내치라 조언하였지만
유비는 자신의 밑에 스스로 온 사람을 버릴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이후 유비의 적로는 채모에게서 도망치는 유비를 업고 단계라는 거친 물살을 한 달음에 뛰어넘어
몇날며칠을 달려 그 포위망을 벗어나는 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했다.
안타깝게도 적로의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그저 그 외형의 특징인 적로만이 전해지지만 이는 도리어 다른 적로 우마무스메들의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치 불가능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가 과학이 발전하며 기적의 상징이 된 푸른 장미처럼,
적로 역시 주군과 아랫사람을 죽이는 흉한 관상으로부터 천명조차 이겨내며 주군을 살리는 충성의 상징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로도 적로 우마무스메들은 기피되기는 커녕, 도리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일이 많았다고 하니.
말 그대로 주군이 준 신의에 보답한 충신의 아름다운 미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편견들은 현재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근대 영국이 기원인 백마와 왕자와는 달리 몇천년이 지나며 많이 흐려지기도 했고.
하지만 한 사람의 우마무스메들이 수많은 우마무스메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이야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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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우마무스메가 뭐가 어떻다고요?"